도시 양봉

1년 양봉 해봤더니 꿀 수확량은 이랬습니다.

traveler-memory 2025. 6. 23. 08:30

1. 첫 양봉 시작: 벌통 설치와 초기 기대치.

양봉을 시작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벌통 하나면 연 10kg은 거뜬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그런 기대감을 안고 작년 봄, 서울 도심의 한 아파트 옥상에 벌통을 설치했습니다. 선택한 벌은 서양꿀벌(Apis mellifera)로, 채밀량이 높고 온순한 품종이었습니다. 전문가 조언을 받아 초기 군체 세팅과 벌통 위치 조정, 방풍시설까지 갖췄고, 꿀 채취 시기는 5~7월로 예상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적게 잡아도 5kg 이상은 가능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꿀을 포장해서 지인에게 선물하거나 마켓에 소량 판매해 보는 꿈도 품었습니다. 그러나 곧 양봉이라는 세계가 단순한 벌통 설치 이상의 세심한 관리와 지식을 요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1년 양봉 해봤더니 꿀 수확량은 이랬습니다.

2. 꽃 자원의 편차: 수확량을 좌우하는 변수.

도시 양봉에서 꿀 수확량을 좌우하는 가장 큰 변수는 바로 주변의 꽃 자원과 개화 시기입니다. 제 경우 벌통이 설치된 옥상 주변에는 공원이 하나 있었고, 봄철에는 벚꽃, 살구나무, 라일락 등이 피었지만 개화 기간은 10일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채밀이 가능했던 시기는 5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로, 생각보다 훨씬 짧았습니다.

게다가 여름철 폭염과 열섬 현상으로 인해 벌의 활동이 제한되었고, 장마철에는 꿀샘 분비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벌이 날아가 채밀할 수 있는 반경은 보통 2~3km지만, 도심에서는 그 범위 안에 지속적으로 꿀을 제공할 수 있는 꽃이 부족하다는 점을 직접 체감했습니다. 결국 이 시기의 꿀 수확량은 약 3.8kg에 불과했죠.

 

3. 벌 관리의 현실: 꿀벌도 건강해야 꿀을 딴다.

꿀 수확량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핵심 요소는 벌의 건강 상태와 군체의 크기였습니다. 첫 해에는 노제마병과 진드기에 시달리며 몇 차례 병해충 관리에 실패했고, 이로 인해 일벌의 수가 급격히 줄었습니다. 여왕벌의 산란력도 일시적으로 저하되어, 벌의 밀도가 낮아지면서 채밀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특히 여름철 벌통 내부 온도 조절 실패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은 벌들이 벌통을 떠나는 분봉 현상까지 발생했는데, 이로 인해 전체적인 수확 계획이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벌통 청결 유지, 온도·습도 관리, 병해충 예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4. 수확보다 의미: 브랜딩과 체험형 가치 확장.

꿀 수확량이 기대 이하였지만, 도시 양봉이 전해주는 비물질적 가치는 매우 컸습니다. 수확한 꿀을 ‘○○동 옥상 꿀’이라는 이름으로 소분해 지인에게 나눴더니, 예상보다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꿀의 양은 적어도 도심에서 직접 길러낸 생꿀이라는 점에서 스토리와 감동을 함께 전달할 수 있었죠.

이후, 지역 어린이 대상 양봉 체험 프로그램도 시범 운영해 봤고, 이 과정에서 꿀벌에 대한 생태 교육 수요가 상당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수확량이 적어도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체험 프로그램과 연계하면 꿀 외에도 수익이나 교육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확인한 것입니다.

 

5. 꿀 수확의 현실: 기대보다 고된 작업.

양봉을 시작하기 전에는 꿀을 따는 일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낭만적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첫 수확의 순간, 채밀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고되고 번거로운 일이라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채밀기 준비부터 꿀벌 진정, 채밀 후 벌통 복구까지는 하루 반나절 이상이 소요되었고, 중간중간 벌에 쏘이는 위험도 있었습니다.

꿀은 벌집에서 바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숙성 상태를 확인하고, 습도 조절을 한 뒤 채밀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꿀벌이 다시 벌집을 재정비할 수 있도록 채밀 범위도 제한해야 했습니다. 무분별한 채밀은 군체를 약화시키고 이후 산란과 겨울나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6. 장비와 비용: 수익보다 큰 초기 투자.

꿀 수확만 생각하고 시작한 양봉이었지만, 실제로는 생각보다 많은 장비와 비용이 소요되었습니다. 벌통, 벌가리개, 보호복, 연기통, 채밀기, 여과망, 보관용 용기 등 하나하나 구비하다 보면 기본 장비만으로도 50~100만 원 이상이 들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냉난방 조절이 어려워, 단열재나 그늘막, 바닥 통풍 구조물 등 추가 자재도 필요했고, 예상치 못한 병해 방제나 약품 구입까지 포함하면 수익은커녕 첫 해는 마이너스 수지로 끝났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도시 양봉은 ‘수익 모델’보다는 생태적 가치와 취미 활동의 확장선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장기적으로는 브랜드를 통한 가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도 분명히 느꼈습니다.

 

7. 꿀 보관과 활용: 수확 이후의 고민.

막상 꿀을 수확하고 나니, 그다음은 “이걸 어떻게 보관하고 쓸 것인가?”라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습니다. 꿀은 고온에 약하고 습기에 민감하기 때문에, 밀폐 용기에 담아 직사광선을 피해 실온 보관해야 합니다. 보관이 부실할 경우 발효되거나, 이물질이 섞여 상품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저는 꿀을 100ml, 250ml 유리병에 나눠 담아 소분 포장했고, 라벨링과 날짜 표시까지 해뒀습니다. 일부는 지인에게 선물하고, 일부는 꿀차나 천연 발효청을 만드는 데 활용했습니다. 꿀 수확은 끝이 아니라, 활용까지 포함된 하나의 완결된 여정이라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결론: 수확보다 중요한 건 경험과 연결의 힘.

도시에서의 첫 양봉 1년은, 꿀 수확량만 놓고 보면 3.8kg이라는 다소 소박한 결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배우고 체험한 것들은 단순한 수확 이상의 가치를 남겼습니다. 꽃의 중요성, 꿀벌 관리의 섬세함, 도시 생태의 한계와 가능성까지 하나하나 체득한 1년이었습니다.

양봉은 ‘꿀을 따는 행위’ 이상입니다. 자연을 돌보고 관찰하며 지역 사회와 연결되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첫 해에는 시행착오가 많겠지만, 그 모든 과정이 다음 해를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준비입니다.

벌이 꿀을 모으는 섬세한 여정처럼, 도시 양봉 역시 꾸준함과 섬세함이 수확의 열쇠입니다. 꿀의 양보다 무언가를 얻고 싶다면, 오늘도 벌통 앞에 서보시길 바랍니다.